한겨울 이삿짐 정리하기
조현자

30년이 넘은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아래층으로 누수가 되어 피해를 입었다는 연락이 받았다.
누수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니 원인이 화장실로 예상되는데 뜯어봐야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전체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하지만 한달정도 소요되는 기간에 집을 비워야 되어 엄두를 못내고 있던 차였다.

가족과 협의 끝에 전체 수리를 하기로 결정하고 수리 기간 동안에는 아들집에서 살기로 했다.
디자인을 결정하고 견적을 받아보니 물가인상으로 인한 비용은 예상 금액을 훨씬 웃돌았다.
한 달여간 준비를 마치고 일정표에 따라 12월 14일 이사짐을 정리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이사라면 포장이사로 하겠지만 수리기간 동안 창고에 살림을 보관해야 해서 직접정리를 해야만 했다.

단순한 살림이라 간단할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새벽부터 시작된 정리는 늦은 밤까지 계속 되었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이번 기회에 모두 정리하리라 결심했지만 물건 나름대로 각각의 역할이 있다보니 만만치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아들과 함께 정리를 하다 보니 의견이 달라 합의점을 찾기가 더욱 쉽지가 않았다.

낡은 패딩은 고등학교 졸업기념으로 엄마가 사준 옷이라 버리기 어렵다는 아들이 주방 그릇은 절반은 사용하지 않으니 모두 버리자고 한다.

그래서 수리가 끝난 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사용여부를 결정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토록 과감하게 정리하려던 마음이 이처럼 흔들리는 것은 물건속에 쌓여있는 시간의 흔적
때문인거 같다.

정리하는 내내 좋은날, 아픈날, 힘든날, 지친날 등 지나간 시간들 속에 함께 있었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니 새롭게 시작할 집에서는 어떤 날들이 펼쳐질지 기대가 커진다.

힘든 날들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특별한 오늘이 너무 좋아서 기대감이 2배로 커진 것 같다.

온 마음을 다해 간절하게 기원했던 소망이 이루어진 오늘처럼 기적의 날들이 계속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