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문학’ 2017년 제21호에 실린 리명희씨의 ‘마지막 종소리’라는 수필을 요약한 것이다.
‘작고 아담한 마을이 있었지. 다 합해도 스무 집이 될까 말까…… 무지개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마을 아래 커다란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 거라는, 마을이 아예 물속에 잠길 거라는 그런 소문이었지…… 옥남이네가 떠났어. 철이네가 떠나고, 이장아저씨도 떠나고, 끝까지 남아 있을 거라는 수곤이 아저씨도 떠났어.…… “쿵! 우루루-” 드디어 큰 중장비들이 마을을 점령했어. 굴삭기가 긴 팔을 휘두를 때마다 집이 무너지고, 담이 허물어지고, 나무들이 뽑혀나가고,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만 거지…… “댕그렁- 댕그렁-” 아직 남아있는 예배당의 마지막 종소리가 빈 마을을 휘돌아 휘돌아 노을 지는 뒷산 너머로 흩어지고 있었어.’
지은이는 작품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고향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무지개마을은 제가 태어난 고향마을입니다.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에 소재했던 마을이지요. 이 글은 수몰 직전, 마을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쓴 것이랍니다’.
먼저, 하루아침에 어린 시절의 소중한 흔적을 잃고 졸지에 수몰민이 되어버린 지은이의 커다란 상실감에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요즘 TV보기가 겁이 난다. 제 뜻에 안 맞는다고 여관에 불을 질러 남의 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제 맘에 안 든다고 친구를 시켜서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이런 인면수심의 천인공노할 일들이 왜 이렇게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지? 나로서는 그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삭막한 정서가 그 배경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한다. 더구나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더욱 그러하리라. 나는 지금 고향에서 오두막생활을 하고 있지만, 설사 누가 서울의 고급아파트 한 채를 공짜로 준다 해도 보따리 싸가지고 올라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노래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 역시 고향에 살아도 고향이 그리운 모양이다.
앞에서 소개한 리명희씨도 자기 동네를 ‘무지개마을’로 소개했다. 그만큼 행정구역상의 명칭보다 예부터 써내려온 동네이름에 더 애착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나 역시 ‘곡성읍내리 7구’보다 ‘세펜네’라는 오래된 우리 동네 이름에 더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우리 외갓집은 여우내에 있다. 어렸을 적에 외갓집에 가고 싶으면 ‘여우내가자’고 했다. 읍내리 6,7구를 곡성읍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세펜네’라고 부르는데 반해 읍내리1,2구는 곡성읍의 동쪽에 있는데도 ‘동편네’라 하지 않고 ‘여우네’라고 한 것은, 동네 옆으로 학정천이 여울져 흐르기 때문에 ‘여울이 있는 동네’라는 뜻의 ‘여울네’로 불리다가 ‘여우네’로 변한 것이다. 한편 여우네의 다른 이름 영운리는 일제 때 억지로 만든 ’여울네‘의 한자식 표현이다.
우리할아버지께선 6.25때 ‘동막’으로 피난을 갔다는 말씀을 생전에 자주 하셨는데, 상도의 가장 먼 마을인 서계리를 ‘웃 동막’, 그 아래 구원1구를 ‘가운데 동막’ 더 아래 구원2구를 ‘아랫 동막’, 이라고 부른다.
한편 동악산 도림사 바로 아랫마을인 월봉리를 ‘따빹물’이라고 한다. 예전에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밭이 많아서 ‘닥나무밭 마을’의 줄임말인 ‘닥밭몰’이 ‘따빠물’로 바뀐 것이다.
우리 동네인 ‘세펜네’위에 방죽이 하나 있다. 그래서 그 동네 죽동리가 ‘방죽골’을 거쳐 ‘방죽굴’이 됐다. 그리고 그 윗마을인 교촌리는 나중에 새로 생긴 고을이라고 해서 새고을을 거쳐 ‘새꿀’이 된 것이다. 거기서 돌아돌아 북쪽으로 올라가면 학정리가 나오는데 옛날에 밤나무가 많았던지 ‘밤쟁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앞 냇가를 지나 땅 고개를 넘어가면서 고갯마루에 있는 돌탑에다 돌멩이 하나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가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땅고개’는 성황당이 있는 고개라는 뜻의 ‘당고개’가 된소리로 변한 것이고, 그 아랫마을 묘천1구가 그래서 ‘당밑에’를 거쳐 ‘댕밑에’가 된 것이다.
곡성읍에서 북쪽으로 전라남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변에 신기1구가 있는데 그 마을을 ‘나릿몰’이라고 한다. 그 옛날 다리가 없던 시절, 나룻배가 오가던 ‘나룻터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나룻몰’인데 ‘나릿몰’로 바뀐 것이고, 그 안쪽마을 신기3구는 뒤에 새로 생겼다고 하여 ‘새터’(신기)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예로부터 우리말로 전해 내려오는 곡성읍에 있는 동네이름을 어느 정도 알아보았다. 하나같이 예쁘고 정다운 이름들이다.
이런 예쁘고 정다운 동네이름을 자꾸 부르다보면 나도 모르게 착한사람이 된다. 착한사람이 많아야 착한동네이고 착한동네가 많은 것이 착한사회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고향의 정을 되찾아 온 국민이 착하게 살아가는 착한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